전체 글(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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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잡다/겉잡다 구별하자.
'걷잡을 수 없는 폭식' '겉잡을 수 없는 폭식' 어느 것이 맞을까 교정교열 세계에서는 단골로 틀리는 말이다. 정답은 '걷잡을 수 없는 폭식'이다. '한 방향으로 치우쳐 흘러가는 형세 따위를 붙들어 잡다'라는 뜻의 동사는 '걷잡다'이기 때문이다. '겉잡다'는 '겉으로 보고 대강 짐작하여 헤아리다'이다 '겉잡아서 한 열흘이면 다 하겠는데요?'처럼 쓴다 물론 몸무게를 겉잡아서 열흘 만에 수십kg 감량할 순 없을 테지만 모두 더운 여름 건강하시기를
2021.07.29 -
순비기 나무, 숨비소리
과거 해녀들의 '숨비소리'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 글은 그 연장선이다. 사실 궁금했다. 왜 '숨비소리'인지, 마침 집앞에 '숨비로와'라는 카페도 생겼는데(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숨비는 말이 단순히 입에 감겨서 그런 것은 아닐테고,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찾아본 결과 숨비소리의 '숨비'는 '순비기 나무'에서 온 것이었다. 순비기 나무는 물질하는 해녀들에게 두통 치료제로 오래 쓰였고, 순비기가 '숨비기'가 되면서 '숨비소리'로 이어졌다고 한다. 순비기 나무는 바닷가 자갈밭이나 모래사장에서 자라는데, 만형자 나무라고도 한다. 이명 만형자는 '늦게[蔓]' 가시나무 열매[荊子]를 맺는 특성에서 붙은 이름이다. 딱 지금 7월쯤 해변가에서 연보라색 꽃을 피우고 10월에 열매 맺기..
2021.07.20 -
역대급을 역대급으로 쓰는 세상
요즘 무슨 일만 벌어지면 등장하는 단어 '역대급'이다. 어떤 대선 후보의 지지율도 좀 오른다 싶으면 역대급이라고 하고 맛도 역대급이고 혁신도 역대급이고 장마도 폭염도 모두 역대급이라고 한다. 그런데 역대급의 말뜻을 풀어보면, 사람들이 이 말을 엉터리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는 사전 풀이로 '대대로 이어 내려온 여러 대. 또는 그동안'이고 '-급'은 '그에 준하는'을 뜻하는 접미사다. '재벌급'이라고 하면 재벌 수준이라는 말 아닌가 따라서 '역대급 기록'이라며 그전의 기록을 뛰어넘는 신기록을 썼다는 식으로 사용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쓰면 '그냥 종전 수준의 기록'이라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신기록을 표현하려면 '역대 최상급 기록'이라고 써야 할 것이고 폭우를 묘사하려면 '역대 최악의 폭우'라든지..
2021.07.14 -
브라질의 수도는?
수도 같은데 공식적으로는 수도가 아닌, 헷갈리게 만드는 지명이 몇 있다. 리우데자네이루가 그렇다, 근래 올림픽이 열려 한국인에게 무척 친숙한 도시이고 각종 매체에서도 자주 다뤄지는 도시라 마치 브라질의 수도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2021년 현재 브라질의 공식적인 수도는 '브라질리아'다. 1960년까지는 리우데자네이루가 수도였지만, 그 이후 수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테면 스위스 하면 생각나는 도시는 제네바인데, 제네바엔 유엔 본부까지 있어 역시 제네바가 수도 같지만 공식적인 스위스의 수도는 베른이다. 베트남도 그렇다, 호찌민을 수도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역시 공식 수도는 하노이다. 호주 수도가 오페라 하우스로 유명한 시드니가 아니고 캔버라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퀴즈..
2021.07.08 -
복숭아
#1 동네에 자주 가는 중국집이 있다. 이름이 '도화원'이다. 짜장면과 탕수육 맛이 깔끔해 자주 찾는다 복숭아 사진을 올려놓고 왜 갑자기 중국집 얘기냐고 물으시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화원'의 '도화'는 복사꽃, 그러니까 복숭아꽃을 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무릉도원'이라 하였고,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길 잃은 어부가 본 신선의 세상에도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 있었으니 요리로 선계(신선이 사는 세상)를 보여줄 요량이라면, 퍽 운치 있는 중국집 이름이다. #2 복숭아가 예로부터 장수의 상징이자, 벽사(악귀를 물리침)의 상징으로 널리 통용됐다는 사실도 알아두면 좋겠다. 복숭아나무를 잔뜩 심어 마치 신선이 사는 '선계'의 느낌을 주고 싶기도 했을 테고 복숭아 나무가 악귀를 ..
2021.07.02 -
희귀병이 아니라 희소병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씨가 원인 모를 복부 통증으로 고생하다 수술을 받고 좀 차도를 보였다는 기사다 이봉주씨의 쾌유를 빌고 또 빌지만, 이 기사의 '희귀질환'은 참 불편하다. '희귀'는 '드물어서 특이하거나 매우 귀함'이라는 뜻인데 가뜩이나 사람을 괴롭히는 병이 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여기서는 '희귀' 대신에 '매우 드물고 적음'이라는 뜻의 '희소'를 써서 '희소질환' '희소병'으로 적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기사 '희귀하다'를 '휘귀하다' '히기하다'로 마구 잘못 적는 현실이니 너무 어법을 빡빡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고칠 것은 바르게 고쳐야겠다.
202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