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2. 20:15ㆍ우리말 이야기

스물여섯 무렵 서울 고시원 방에서 쪽잠을 자면서
"서른다섯 살에는 다 포기하고 오로라를 보러 유럽 여행을 가겠어"라고 결심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서른다섯을 훌쩍 넘긴 2021년에도 아직 유럽은 가지 못했고, 오로라도 보지 못했다. 오호통재라. 인생이여
(그렇지만 마흔다섯에는 꼭 가볼 것이다. 다시금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난 김에, 그 '유럽'은 어디서 온 말이고, 흔히 쓰는 '구라파'는 정체가 뭔지 글을 써보기로 했다.
글을 쓰다 보면 결국 서른다섯에도 오로라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해결될까 하여
'유럽(Europe)'은 그리스 신화 속 소녀 에우로페(Europe)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아름다운 그녀를 탐내 흰 소로 변신, 온 세상을 돌아다녔고, 마지막에 크레타섬에 도착하였는데
에우로페는 그 크레타 섬의 여왕이 되었으며, 세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 기간에 제우스와 에우로페가 돌아다닌 지역들을 '에우로페' 그러니까 '유럽'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좀 더 학술적으로는 크레타인들의 에우로페 숭배 토속신앙을, 크레타를 점령한 도리스족이 흡수하면서 전 유럽에 에우로페 신앙이 퍼졌고, 그것이 '유럽'의 시원이 됐다고도 한다. 도리스족의 주신은 제우스다.(곰 부족 호랑이 부족 하는 단군신화 생각도 난다.)
그에 따라 EU의 공식화폐인 유로화 곳곳에는 에우로페 여신이 그려져 있고, EU 장기 체류증에도 그 상징으로 황소 홀로그램이 들어 있다.
그럼 구라파는 뭔가, 애초에 중국에서 'Europe'을 우라파(歐羅巴)로 음차해 읽었는데, 그게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歐'를 '구'로 읽는 한국 사정상 '구라파'가 된 것이다.
오늘은 어째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만 하지 않으면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지겠다.
코로나가 얼른 끝나고, 진짜 에우로페 여신을 보러 가는 그날을 기다리며, 다음 주에 더 좋은 얘기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린다. 좋은 주말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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