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5. 15:30ㆍ우리말 이야기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가장 충격받은 음식이 '빈대떡'이었다.
'양복 입은 신사'가 '매를 맞는다'는 그 음식인데
처음 광장시장에서 만난 빈대떡은 그 모양새가 상상했던 것과는 영판(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대구가 고향인 나에게 빈대떡은 흡사 기름에 절고 전 두툼한 떡 같은 음식으로 다가왔고
막걸리랑 함께 먹는 것이라는데 처음에는 속이 부대껴 몇 점 주워 먹기 어려웠다.
"빈대떡 맛을 모르느냐"고 반문하실 독자분들도 계실 걸로 알지만
그도 그럴 것이 대구에서 이십오륙년을 나고 자라면서 빈대떡은 통 먹은 적이 없고
항상 상에 오르는 것은 '찌짐'이었기 때문이다.
찌짐은 사투리로 '꾸루무리'(끄무레)한 날, 여름비가 '억수로'(굉장히) 쏟아지는 날에
정구지(부추)에 밀가루 물을 넉넉히 두르고, 가장자리가 바싹 탈 정도로 손이며 주걱으로 꾹꾹 눌러 먹어야 맛이다.
그날그날 입맛과 사정에 따라 방아잎을 섞기도 하고, 홍고추며 땡초를 섞어 넣기도 하는 음식이며
밀가루가 하얗게 묻은 어머니 할머니 손이 절로 생각나는 음식이다.
또 '찌짐' 하면 으레 정구지 찌짐을 일컫는 것인데, 어떤 때는 제삿날 기름 냄새 나도록 부쳐 올리는 모든 종류의 전을 그저 '찌짐'이라 하기도 했다. '찌짐 꾸러(구우러) 큰집 간다' 하는 식이다.
사전은 부추전의 사투리가 정구지 찌짐이라 하지만, 필자에게는 분명히 다른 음식이다.
찌짐은 찌짐이다. 또 찌짐에는 제사마다 불려 가 '찌짐을 꾸버야' 했던 누이와 엄마의 고된 노동도 묻어 있다.
찌짐이 그리운 겨울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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