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행진곡

2021. 1. 29. 16:27우리말 이야기

자료: 픽사베이

험한 말로 싸울 때 우리는 "밥숟가락 놓고 싶냐"고 따진다. "젓가락 놓고 싶냐"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해놓은 일에 은근슬쩍 얹혀 갈 때 "숟가락을 얹는다"고 한다. 역시 젓가락을 얹지는 않는다.

짜장면도 짬뽕도 컵라면도 젓가락으로 먹는 세상인데 말이다. 

물론 "한 젓가락 하러 가자" 하는 사람이 없진 않지만, 아직 젓가락이 숟가락을 이기지는 못한 것 같다.

이는 한중일의 식사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식문화에서 '숟가락'의 위상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한중일 세 나라 모두 고대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썼으나, 세월이 흐르며 중국과 일본에서는 숟가락을 잘 쓰지 않게 됐다.

중국은 송나라 이후 기름 요리 및 면 종류 등 밀가루 음식을 주식 삼게 되면서 젓가락이 숟가락을 앞질렀고

일본은 찰기가 있는 밥을 작은 나무 그릇에 담아 들고 먹으면서 젓가락이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깊고 우묵한 백자 사발에 밥을 담아먹는 게 보통이었고, 거기에 국이나 짠지 등 반찬까지 같이 먹었기에 숟가락이 빠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숟가락'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술 + 가락이라는 주장이 보편적인데

여기서 '술'은 '입'을 뜻하고, '가락'은 '손'을 뜻한다. 

"한술 뜨고 가세요"의 그 '술'과 같다. '한술'은 곧 '한입'이다.

또 '술가락'은 ‘설+달→섣달’ ‘이틀+날→이튿날’과 같은 원리로 'ㄹ'이 'ㄷ'이 되면서 '숟가락'이 되었다.

요즘 모두 '밥숟가락' 걱정에 속이 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평안히 '한술' 뜨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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