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74)
-
브레이브걸스, 그리고 '왕귀'(왕의 귀환)
걸그룹 '브레이브걸스'가 4~5년 만에 '역주행'을 이룩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역주행'은 사전적으로는 '같은 찻길에서 다른 차량들이 달리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달림'으로 좋지 않은 뜻인데 가요계에서는 '시간이 오래 지나 하위권에 묻힌 곡이 차트를 거꾸로 거슬러 1위를 차지함'이라는 뜻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예전 대비 가요 시장에서 음악의 소비 속도나 순환 속도가 빨라졌고, 차트 진입 후 하위권으로 내려간 곡은 순위를 거꾸로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브레이브걸스 이전 가장 최근 사례로는 걸그룹 'EXID'가 '위아래'로 차트 역주행을 달성한 바 있는데 EXID와 브레이브걸스의 차이점이라면, EXID는 한 팬이 찍어 유튜브에 올린 '직캠'(직접 찍은 영상)에서 열기가 시작됐다면 브레이브걸스..
2021.03.22 -
한계령(寒溪嶺)
양희은 '한계령' 살아가는 일이 힘에 부칠 때면 차분한 노래를 찾는다. 그중 필자가 가장 많이 재생을 누르는 곡은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라며 읊조리는 가사가, 응어리진 마음에 위로를 전해준다. 그래서 어떤 때는 '차가운 시내'라는 본뜻대로 '한계'(寒溪)령이 아니라 '한계'(限界)령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계령은 실제로 태백산맥을 굽이굽이 넘어가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개인데 그 고갯마루 높이만큼이나 삶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듣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양희은의 한계령을 들으며, 그래도 이제는 오르막은 다 올라왔겠지, 이제는 내려갈 수 있겠지..
2021.03.17 -
유럽, 에우로페, 구라파.
스물여섯 무렵 서울 고시원 방에서 쪽잠을 자면서 "서른다섯 살에는 다 포기하고 오로라를 보러 유럽 여행을 가겠어"라고 결심했던 적이 있다.그러나 서른다섯을 훌쩍 넘긴 2021년에도 아직 유럽은 가지 못했고, 오로라도 보지 못했다. 오호통재라. 인생이여(그렇지만 마흔다섯에는 꼭 가볼 것이다. 다시금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생각이 난 김에, 그 '유럽'은 어디서 온 말이고, 흔히 쓰는 '구라파'는 정체가 뭔지 글을 써보기로 했다.글을 쓰다 보면 결국 서른다섯에도 오로라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해결될까 하여 '유럽(Europe)'은 그리스 신화 속 소녀 에우로페(Europe)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아름다운 그녀를 탐내 흰 소로 변신, 온 세상을 돌아다녔고, 마지막에 크레타섬에 도착하였는데..
2021.03.12 -
왜 한 냥이 아니고 '한 푼 줍쇼'일까.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거지'를 묘사할 때면 꼭 '한 푼 줍쇼'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정작 '한 푼'이 대충 얼마 정도 되는지, 왜 '한 푼'만 달라고 하는지, 한 냥 달라고는 하지 않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이는 '푼'을 숟가락으로 알고, '한 숟가락 주십쇼' 정도로 이해하는 것도 보았다. 18세기 조선 시대 학자 황윤석의 등을 참고해 계산해보면 한 냥은 현재 돈으로 대략 6만~7만원 정도고, 100문(푼)이 한 냥이니, '한 푼'은 600~700원 정도다. (물론 단순 숫자로 환산하면 이렇고, 조선 시대 쌀의 가치를 생각하면 실제 1냥의 값어치는 6만 원의 10배 이상은 될 것으로 본다) 이러니 '한 냥 줍쇼'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2021.03.08 -
'날씨'에 대하여
지난 주말 서울에는 비가 오고,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려 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짧은 시간에 10cm 넘는 눈이 내려 제설 차량조차 발이 묶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요즘 참 이렇게 날씨를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필자는 기상에 문외한이라, 요즘 날씨가 오락가락 이상한 건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비나 눈이 오고 산불이 일어나는 게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 부분은 얘기하자면 소양이 부족한 부분이 끝도 없으니 밀어두고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건 '날씨'와 '기상'이라는 단어다. 한자어로 '기상'(氣象)은 우리말로는 '날씨'라 한다. 여기까지는 다들 당연히 아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날씨'가 어떻게 만들어진 말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21.03.03 -
'패피'가 되는 건 어려워
어릴 때부터 유독 옷 입는 데 소질이 없었다. 대학 시절 유행을 따라가 본다고, 예의 그 '배정남 룩' 그러니까 카고 바지에 비니 모자 따위를 쓰고 다닌 적은 있으나, 그런다고 내가 '배정남'이 될 수는 없었다. 그 뒤로는 아예 '패피'(패션 피플)가 되는 건 언감생심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패션'이 먹고사는 일에 장애물로 등장할 줄은 몰랐다. 글 다루는 것으로 밥을 만들다 보니, 패션 관련 글을 종종 보는데 하나하나가 너무 암호 같았다. 외래어 표기법과 입말의 차이가 큰 것도 있고, 영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것도 있어 골이 지끈거리는 것이다. 그래도 밥을 만들려면 일은 해야 하는지라, 하나하나 단어의 뜻을 뜯어보았다. 우선 '골덴'은 '코듀로이' '코르덴'의 일본식 발음이다. 골이 지게 짠 옷감..
202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