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피'가 되는 건 어려워

2021. 3. 1. 16:27우리말 이야기

자료: 픽사베이
자료: https://pixnio.com/ko/media/ko-2358777, 중절모

어릴 때부터 유독 옷 입는 데 소질이 없었다. 

대학 시절 유행을 따라가 본다고, 예의 그 '배정남 룩'

그러니까 카고 바지에 비니 모자 따위를 쓰고 다닌 적은 있으나, 그런다고 내가 '배정남'이 될 수는 없었다.

그 뒤로는 아예 '패피'(패션 피플)가 되는 건 언감생심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패션'이 먹고사는 일에 장애물로 등장할 줄은 몰랐다.

글 다루는 것으로 밥을 만들다 보니, 패션 관련 글을 종종 보는데 하나하나가 너무 암호 같았다.

외래어 표기법과 입말의 차이가 큰 것도 있고, 영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것도 있어 골이 지끈거리는 것이다.

그래도 밥을 만들려면 일은 해야 하는지라, 하나하나 단어의 뜻을 뜯어보았다.

우선 '골덴'은 '코듀로이' '코르덴'의 일본식 발음이다. 골이 지게 짠 옷감을 말한다.

'후리스' 또한 '플리스'의 일본식 발음으로, 양털 등의 모직물을 기모 가공한 옷감을 말한다.

'무지'셔츠의 '무지'는 한자어인데 '무늬가 없이 전체가 한 가지 빛깔로 됨. 또는 그런 물건'을 뜻하며

'나그랑 셔츠'의 '나그랑'은 '래글런'을 잘못 읽은 것인데, '어깨를 따로 달지 않고 깃에서 바로 소매로 이어지게 만든 푹신한 외투'를 뜻한다. '나그랑 맨투맨'이 목에서부터 바로 소매선이 떨어지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잘 쓰면 패피, 잘못 쓰면 '야인시대 김두한'이 되는 중절모(中折帽)가 바로 '페도라'다

가운데가 접혀 있어서 '중절'(中折)이란 한자가 붙은 것이다.

먹고 입고 사는 것 중에 말은 '입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필자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파리지앵'이 되는 길은 왜 이리도 험난해 보이는지!(정말 마지막, 파리지앵은 남자 패피에게 붙이는 말이다. 그럼 여성은? '파리지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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