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9. 19:37ㆍ우리말 이야기
필자가 어릴 적 아버지는 틈이 날 때마다 "개떡 맛을 아느냐, 배고프고 가난한데 그거라도 얻어먹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었다"고 말씀하셨다.
또 개떡은 "밀가루 풀에다가 나물이며 보릿겨 남은 것을 뒤섞어 뭉쳐 떡 흉내를 낸 끔찍한 음식"이라고도 하셨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떡이라고 하면 김이 모락모락 윤기가 흐르는 쑥개떡 정도를 생각하던 나는
"오죽 맛이 없으면 일이 안 풀리거나 할 때 '개떡같네'라고 할까" 싶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개떡'은 아직도 먹어보지 못했다.)
돈 푼 버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또 다른 떡을 만났다 '비지떡'이다.
주머니가 헐렁했던 고시원 시절, 주머니 사정에 맞춰 뭔가 살 때마다 "싼 게 비지떡"을 외쳐야 했기 때문이다.
(할인 행사에서 반값에 산 티셔츠는 하루도 못 가 세탁기에서 목이 늘어났고
역시 저렴하지만 '나이키' 못지않다고 광고하던 만원짜리 운동화는 뒤축의 철사가 다 삐져나와 발을 온통 긁어놨다.)
그런데 더 최근에 안 것은
원래는 이 비지떡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옛날 한 주막에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에게 비지떡을 싸주면서 "싼 게 비지떡이니 드시라"며 인심을 후하게 썼는데
그 '싸다'가 '값이 싸다'로 와전되면서 비지떡도 신세가 험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넉넉히 살진 못하지만
가끔 그 '개떡' 같던 고시원에서 가끔 틀어주는 에어컨 바람이라도 쐬는 게 '비지떡'이던 10년 전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초심을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글도 열심히 쓰고.
주말 잘 보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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