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박지와 깍두기.

2020. 12. 22. 16:10우리말 이야기

섞박지, 한국의식주생활사전(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7752)

추운 겨울날 손을 호호 불면서 걷다 보면 금세 시장해지고,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난다.

펄펄 끓여 내온 돼지국밥 따위에 아삭한 깍두기를 한입 베어 물 때 그 쾌감은

한국 사람이어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맛일 것이다. 여기에 소주 한 병까지 마시면 더할 나위가 없을 듯하다.

다만 여기서 우리말 지킴이로서 아쉬운 점은 

이렇게 국밥에 보통 곁들여 먹는 깍두기를 곧잘 섞박지라고 부르는 것인데 

둘은 엄연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깍두기 대신 섞박지를 내주는 후한 가게도 있겠지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섞박지는 '배추와 무ㆍ오이를 절여 넓적하게 썬 다음, 여러 가지 고명에 젓국을 쳐서 한데 버무려 담은 뒤 조기젓 국물을 약간 부어서 익힌 김치'이고

깍두기는 '무를 작고 네모나게 썰어서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든 김치'다.

재료 면에서 엄연히 차이가 있는 음식인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음식 유튜버가 영상에서 깍두기를 그저 섞박지라고 부르는 것을 자주 본다. 

이 섞박지는 시인에게도 영감을 주었는지, 백석의 '북관(北關)'이라는 시에도 등장한다.

‘명태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을 / 이 투박한 북관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 나는 가느슥히 여진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 까마득히 신라 백성의 향수도 맛본다.’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물론 깍두기인지 섞박지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마는, 백석 시인도 추운 날 국밥 한 그릇에 깍두기 석밖지 같은, '시큼한 배척한' 강렬한 인상을 느꼈던 모양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지만 강화되는 거리 두기로 예넌 같은 모임은 생각할 수 없는 요즘이다.

아쉬운 마음 '뜨끈한' 국밥에 섞박지 깍두기라도 한 술 뜨면서 덥히셨으면 한다. 

아 그리고, 석박지가 아니라 '섞박지'라는 것도 기억해주시기를. '깎두기'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