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8. 20:07ㆍ우리말 이야기
1980년대생인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햄버거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간식이었다.
요즘 세대가 들으면 '정말 그랬어요?' 할 일이지만, 햄버거는 '초고급' 간식이었고
생일파티를 '롯X리아'에서 한다고 하면 어마어마한 생일 행사로 기억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린 날 어느 한때는 햄버거집에 가서 감자튀김을 테이블 가득 부어놓고 먹는 게 꿈이었다.
기름지고 짭짤한 그 맛이 혀에 어찌나 감기던지 말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필자는 햄버거는 '햄'이 들어가서 햄버거인 줄 알았다.
실제로 온 나라가 IMF 빚더미에 앉고 나서 실제로 햄 조각이 들어간 햄버거가 값싸게 나오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사실은 '햄버거'와 '햄'은 상관이 없다.
햄버거는 19세기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에 전파한 스테이크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이 스테이크는 처음에 이름이 '하크스테이크'였는데, 이내 '함부르크식'이라는 뜻의 '함부르거'(Hamburg-er)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다진 고기를 둥글 납작하게 빚어 구워 먹는 형태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스테이크를 두 빵 사이에 패티로 끼워, 샌드위치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후 '햄버거'는 '빵 사이에 '햄버그 스테이크'를 끼워 넣어 만든 샌드위치'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햄버그 스테이크'를 패티로 쓴 것만 '햄버거'였고, 햄 같은 것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 뒤로 여러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이 생기고 메뉴가 개발되면서 '햄버그 스테이크' 외에 다른 재료를 둥글납작하게 빚어 패티로 끼운 것도 모두 '햄버거'라고 통칭하게 됐다.
불고기 패티를 넣어도 햄버거, 둥글게 튀긴 돈까스를 넣어도 햄버거인 것이다.
덧붙여 함박 스테이크의 '함박'은 Hamburger의 일본식 발음인 한바그(ハンバーグ)가 변형된 것이고
독일 축구팀 Hamburger SV는, 함부르크 SV이자 '햄버그' SV인 셈이다. (누구도 이렇게 읽진 않는다.)
즐거운 저녁시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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